1월 11일 동해의 항구들을 돌며 탐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속초 위쪽의 장사항에서 아비를 관찰하고 난 후 유명한(거의 닭 수준인) 청머리오리를 보기 위해 아야진항에 들렀습니다.
후배들이랑 같이 탐조중이었는데, 후배들이 아직 청머리오리를 보지 못했었거든요.
아야진항의 포구 안쪽 경찰서 근처에서 청머리오리, 세가락갈매기, 민물가마우지 속에 섞인 가마우지를 관찰하였습니다.
그리고 돌아나오려는데 유독 눈길을 끄는 녀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생김새는 청둥오리나 홍머리오리 등의 암컷과 비슷하게 생겼었는데...
엉덩이쪽의 하얀 색 바 2줄이 자꾸 눈에 거슬렸습니다.
'어라? 저거 내가 전에 보던 녀석들과는 다른데?'
"얼른 스코프 이리줘봐!"
크기는 청머리 오리만했고, 얼굴생김이 다른 오리들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일단 부리가 흰죽지종들과 비슷하게 생겼더군요.
조금 다른 실루엣의 얼굴과 부리, 그리고 엉덩이의 흰줄 때문에 조금씩 긴장이 되더군요.
'혹시 저거 신종 아닐까?'
도감을 뒤적이며, 녀석을 계속 관찰했습니다.
녀석은 청머리, 청둥오리 무리들과 뒤섞여서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머리를 물 속에 쳐박고 먹이활동에도 열중이었구요.
후배들이랑 그 녀석을 한참을 관찰하면서... 어떤 종일까 설왕설래했더랬습니다.
그렇게 20여분의 관찰 시간이 흐른 후
내린 결론은...
"저 녀석은 홍머리오리의 수컷변환깃과 Phochard 종의 교잡종일거야."
"교잡종은 신종으로 안 쳐주는 거 알지? 신기하게 생겼네~ 다른 항구로 가자."
이렇게 해서 대단한 신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를 접고, 그날 오후와 다음날까지 정말 열씨미 동해안의 항구들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혹시 만나게 될 지도 모를 멋진 새를 기대하면서 말이죠. ^__^;
다음날인 월요일에 집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던 중에 녀석의 사진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 녀석은 어떤 녀석들의 하이브리드일까? 한 번 찾아볼까나~'
가지고 있는 도감들을 뒤적이던 중
녀석과 비슷한 머리모양과 부리를 가진 녀석을 보게되었습니다.
'어? Eider랑 비슷하게 생겼네?'
하지만 제가 가진 도감(일본의 야조 590)에는 암컷의 사진이 자세하지가 않았고, 결론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하여 서산에 있는 한수씨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한수씨, 가지고 있는 도감 중에.. Eider 종에 대한 것 있으면 전부 스캔해서 보내줘봐요. 최.대.한. 빨.리."
여러 가지 일로 심란했을(나중에서야 알았어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 한수씨를 재촉하여 자료를 부탁하고는,
그 새를 못참고 인터넷을 뒤적였습니다.
Eider 암컷에 대한 사진들이 우수수 쏟아지는데... 다 그놈이 그 놈 같더라구요. ^^;
이 녀석에 대한 처음 동정은 "Common Eider".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다른 사진들을 뒤져보니 정말 그렇더군요.
신종 발견에 대한 기대로 가슴은 점점 뛰기 시작하고 이성적인 판단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하여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일단 후배들을 불러모아서 다시 동정을 위한 웹서핑을 시작하였습니다.
다음 후보로 지목된 것은 King Eider의 암컷.
촬영된 사진과 웹 상의 이미지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씩 대조하여 보았습니다.
사진마다 색감이나 촬영된 각도에 따라 부리 길이나 비율이 달라보여서 혼란은 가중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옆구리(side)의 무늬가 Common Eider와 King Eider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Common Eider는 옆구리의 줄무늬가 스트라이프 형태로 나타나고,
King Eider는 줄무늬가 U자형의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녀석은 틀림없는 King Eider의 암컷이다.'
신종을 발견했다는 떨림과 함께... 발견 후에 있을 복잡다단한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다른 분들께 이 일을 먼저 알려야겠다는 생각이었고,
"King Eider 암성조 아야진항에 출현. 얼른 가보시기 바람."
연락처를 알고 있는 지인들께 문자메세지를 띄웠습니다(저를 알고 계시면서도 연락을 받지 못한분께는 죄송한 말씀 전합니다. ㅡㅡ;)
문자를 보낸 후 1분도 지나지 않아 전화통에 불이 나더군요.
한 한 시간 여를 전화를 그렇게 정신없이 받다 보니, 차츰 내가 정말 귀한 녀석을 발견했구나 하는 실감이 나더군요.
야조회 홈페이지에 조심스럽게 올린 King Eider 관찰 소개글에 박종길 선생님이 답글을 달아주었습니다.
'멋진 국명 고민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해서 새해 첫번째 달에 멋진 녀석을 발견하고, 아직까지 여러 가지 잡다한 일들과 국명에 대한 고민들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쓰다보니 길고 지루한 글이 되어 버렸습니다만 이해해주시리라 믿습니다. ^^
일부러 전화까지 해서 축하해주시고 문자주시고 댓글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온 한해는 더욱 새로운 녀석들이 많이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King Eider 관찰 일지>
1월 11일 아야진항에서 암컷 성조 첫 관찰(관찰자: 김석민, 임위규, 곽충근)
1월 16일 거진항에서 암컷 성조 두 번째 관찰(관찰자: 정옥식님)
1월 17일 울진 죽변항에서 수컷 성조 첫 관찰(관찰자: 박흥식 선생님 외 7분)
현재 거진항에서 암컷이 관찰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울진항에선 오늘 저녁때까지 수컷이 관찰되었다고 하는군요. ^^
덧붙여서:
이 녀석의 국명에 대해서 지난 일주일간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였습니다.
주변분들께 조언을 구하고, 웹상의 사진과 자료들을 모두 읽어보고 후배들과 모여서 머리도 맞대고 상의해보고.
새로운 새를 발견하여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영광되고 신나는 일이지만...
두고두고 욕먹지 않으려면 정말 이름을 잘 붙여야겠다는 고민도 함께 되어서 말이죠. ㅎㅎ ㅡㅡ;
이 녀석들 사는 곳이 북극 근처의 고위도 지방이니까... 북방
이 녀석들의 영명 이름인 "King Eider"에서도 나타나듯이 수컷의 이마 모양이 꼭 왕관(crown)처럼 생겼으니...
합쳐서 "황제북방오리"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