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새를 찾아서(46)...종다리(2)
지난 토요일이었습니다. 창원의 모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노고지리 둥지를 발견했습니다. 아마 일주일 이내로 이소를 할 것같아요. 빠른 시간 내에 창녕으로 한번 내려오시지요.’
그 때가 아침 10시. 대청역 근처에서 볼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차를 몰고 집으로 가서 종다리 자료를 보니 이소 시기는 부화 후 불과 10일후였습니다. 들새는 빨리 이소를 하지 않으면 천적의 습격을 받기 쉬우므로 이소를 시키고 난 후,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 활동을 한다고합니다. 다음날인 일요일에 홍도에 갈 요량으로 열차표도 미리 예매를 마쳤지만, 아무래도 홍도보다는 창녕 쪽이 신경이 쓰입니다. 홍도에 갔다오면 종다리는 이미 이소를 할 것만 같습니다.
10분간의 고민 끝에 결정했습니다. 홍도 행 열차표를 취소를 하고 승용차로 창녕으로 먼저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창녕에 가서 노고지리를 보고 난 후 하루 숙식을 하고 남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목포로 가는 것입니다.
4시간 10분만에 남지에 도착했습니다. 남지낙동강(남강?)변 수십만평 평지에는 유채꽃이 한창이었습니다.

날도 맑은 5월의 푸른 창공에서 노고지리가 즐겁게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이 어릴적, 5월의 보리밭길을 걸어가면, 푸른 창공에서 울었던 전형적인 노고지리 모습이었습니다. 노고지리는 보리가 익어 깜부기가루가 날리는 늦봄까지 계속 울었습니다. 보리가 익는 계절은 딸기가 익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서 고사리같은 손으로 딸기를 따면 바지는 이슬에 젖어버리고, 손톱은 딸기 순荀에 마모되어 동그랗게 파졌습니다. 새벽 일을 마치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책가지를 챙겨서 부랴부랴 보리밭길을 가로질러 학교를 갈 때면 노고지리가 즐겁게 맞아주어 아침의 피로도 씻겨졌습니다.


유채꽃과종다리두마리
유채꽃 주변에서는 노고지리들이 부지런히 먹이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선생님이 미라 알아둔 둥지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풀 속에 작게 만든 둥지는, 다시 발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절묘하게 만들었습니다. 둥지를 찾으니 이미 새끼는 이소를 하고 난 뒤였습니다. 어제만 해도 일주일을 넘게 둥지에서 어미로부터 먹이를 받아 먹을 것같았던 새끼가 인간의 눈길을 확인하자말자 바로 둥지를 떠나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둥지 주변에는 새끼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이 날 모선생님이 잡은 새끼만도 세 마리였습니다. 새끼는 사람이 접근하면 죽은 척 가만히 있다가 사람의 경계가 느슨해지면 날아갔습니다.


다음 날 목포로 떠나기 전, 이른 아침에 막간의 시간을 이용하여 노고지리를 가까이 찍어보려고 위장막을 쳤습니다만 시간이 촉박하여 성과는 없었습니다.



유채꽃 주위로 두 청춘남녀가 걸어가고 있습니다. 한 폭의 그림입니다. 이 광경을 보니 또 옛날 생각이 나더군요. 모두 아실랑가 모르겠군요. 옛날 먼 옛날...우리 동네 아랫각단에 옥이라는 여학생이 살았더랬습니다. 사진 속의 처녀보다 외모도 좋았고 아부지 돈도 많았습니다. 저는 젊을 적에, 위 사진 속의 처녀 정도를 데리고 데이터할 정도로 눈이 ‘쑥씩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옥이가 이 정도라면 이 나이되도록 옥이 타령을 읊어대지 않습니다.
‘옥아~~ 붙던 자리에 붙어라! did you see any special boys in korea?(조선 놈 별 놈있더냐?)’
그런데 이런 옥이가 깜부기 가루 날리는 어느 봄날, 저를 훌쩍 떠나고 말았습니다. 흑흑흑...
옥아 다시 돌아만 와다오. 네가 다시 돌아온다면 백일홍소매 깨끼한복해 입혀 저 유채꽃밭을 걸어보고 싶구나.
♬저 산 넘어 새파란 하늘 아래는 그리운 내 고향이 있으련마는 천리멀리 먼 땅에 떠난 이 몸은 고향 생각 그리워 눈물지우나~~
버들숲 언덕에 모여앉아서 풀피리 불며 놀던 그리운 동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나 생각토록 내 고향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