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새를 찾아서(47)...파랑새(1)


파랑새는 동서양을 통하여 두루두루 이야기거리가 되었고 우리나라에도 많은 시조와 노래가 전해지고 있다.
서양에서는 벨기에 작가 메테를링크의 동화 ‘파랑새’는 치르치르와 미치르 남매가 파랑새를 찾아다니는 이야기이다. 남매는 병든 딸을 위해 파랑새를 찾아달라는 마법사 할멈의 부탁을 받고 개, 고양이, 빛, 물, 빵, 설탕 등의 요정과 함께 상상의 나라, 행복의 정원, 미래의 나라, 추억의 나라 등을 찾아 밤새껏 찾아 헤매었지만 어디에도 파랑새는 없었다. 꿈을 깨고 보니 파랑새는 바로 머리맡 새장에 있었다. 진정한 행복은 바로 가까이에 있음을 알려주는 동화이다. 그러나 파랑새의 분포를 보면 유럽에는 파랑새가 서식하지 않는다. 도감을 보면 파랑새는 아시아권과 호주 지역에만 분포되어 있다. 파랑새를 Dollarbird 또는Eastern Broad-billed roller로 한다. Eastern이란 접두어가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아시아에서만 서식하는 것이 타당한듯하다. 그러므로 메테를링크의 동화 ‘파랑새’는 Dollarbird가 아닌 희망과 행복을 상징하는 상상의 새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역사와 구전 자료에도 파랑새가 자주 나오지만 이 파랑새가 Dollarbird인지는 알 수없다.

1.새야 새야 파랑새야
우리들의 어렸을 적
황토 벗은 고갯마을
할머니 등에 업혀
누님과 난, 곧잘
파랑새 노랠 배웠다.
울타리마다 담쟁이넌출 익어가고
밭머리에 수수모감 보일 때면
어디서라 없이 새 보는 소리가 들린다.
우이여! 훠어이!
쇠방울 소리 뿌리면서
순사의 자전거가 아득한 길을 사라지고
그럴 때면 우리들은 흙토방 아래
가슴 두근거리며
노래 배워주던 그 양품장수 할머닐 기다렸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잘은 몰랐지만 그 무렵
그 노랜 침장이에게 잡혀가는
노래라 했다.(신동엽 금강)
배다른 누나와 함께 파랑새 노래를 배우기 위해 양품 장수 할머니를 기다리던 그 파랑새는 과연 어떤 파랑새일까. 아마도 녹두 장군 전봉준을 가르키는 파랑새도 Dollarbird는 아닌듯하다. 파랑새가 녹두밭에 앉을 가능성은 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파랑새를 관찰해보면 고목 나뭇가지나 전신주 꼭대기, 전기줄에 주로 앉는다. 정민 한양대 교수가 펴낸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를 보더라도 녹두장군 파랑새는 Dollarbird와는 관계가 없는 새라고 적었다. 이 책에서는 전(全)봉준의 全을 破字하면 ‘팔(八)왕(王)새’이니 즉 파랑새는 전봉준을 말한다고 적고 있다.

2.청조가
화랑세기에 실린 청조가야말로 파랑새를 말하는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화랑세기는 유교적 관점에서 보면 거의 음란퇴폐 왜설이다. 이 때문에 화랑세기가 위작(僞作)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위작이라면 너무나 많은 모순점이 나올 수밖에 없어 근래에는 위작이라는 주장은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은 삼국사기에도 화랑세기를 저술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화랑세기를 통하여 신라가 어떻게 천년의 역사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를 잘 알 수있다고 한다. 화랑세기에 나오는 ‘청조가’는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는다. 또한 청조가의 주인공 미실도 나오지 않는다. 미실을 사모했던 사다함. 사다함의 향가 청조가는 천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 날에도 우리 귓전을 울리고 있다.
미실은 신라 진흥왕 시대에 타어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미실의 첫 남편은 세종었는데 세종은 법흥왕 왕비였던 지소태후와 박이사부(독도는 우리 땅 노래에 나오는 이사부 장군을 말함)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었다. 즉 지소태후는 왕비의 신분임에도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니 이 당시만 해도 신라에는 유교가 도입되지 않았고 혈통을 매우 중시한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미실은 세종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더욱이 세종의 어머니 지소태후는 미실을 좋아하지 않았다. 결국 미실은 화랑 사다함을 좋아하게 된다. 미실의 평생에서는 사다함이 잊지못할 첫사랑의 남자였다. 나이가 스물살도 안된 젊은이들이었으므로 진흥왕으로부터 둘의 결혼 약속도 받아낸다. 그러나 무슨 운명의 장난이었던가. 사다함은 전장터로 나가게된다. 미실은 눈물을 흘리면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바람이 불어도 임앞에 불지마오
물결이 쳐도 임앞에 치지 마오
어서 돌아와 다시 만나 안고 보오
아아, 임이여 잡은 손을 차마 떼라니요
전 남편 세종은 미실을 잊지 못하여 어머니 지소태후에게 다시 미실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조른다. 결국 강요에 의해 미실은 다시 전 남편 세종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한편 전장에서 승리하여 돌아온 사다함은 미실과 달콤한 신혼 꿈에 부풀었지만 미실은 다시 세종의 부인이 되어있었다. 사다함은 이 마음을 노래로서 달래니 이것이 화랑세기에 나오는 청조가이다.
파랑새여 파랑새여 저 구름 위의 파랑새여
어이하여 내 콩밭에 내렸는가
파랑새여 파랑새여 내 콩밭의 파랑새여
어이하여 다시 날아 구름 위로 가는가
이미 왔으면 가지 말지 또 갈 것을 왜 왔는가
공연히 눈물짓게 하고 상심하여 여윈 끝에 죽게 하려는가
나는 죽어 무엇이 될까, 나는 죽어 신병(神兵)이 되리
그래서 그대에게 날아들어 수호신이 되어
아침저녁으로 전군부처(세종과 미실)을 보호하리
만년 천년 죽지 않도록
그리움에 못 견뎌 죽어가면서도 애인과 애인 남편을 지켜주겠다고 했던 사다함. 사다함은 미실을 그리면서 젊은 나이에 결국 세상을 떠난다. 그 후 미실은 사다함이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그 후 미실은 아기를 낳게 되는데 사다함과 비슷한 아기(하종공)를 낳았다고 ‘화랑세기’는 적고 있다. 하종공은 제11대 풍월주가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사랑의 아픔을 겪고난 후 미실은 변하기 시작하였다. 사랑을 잃은 그녀에겐 더 이상 순정은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오로지 권력욕만 남았다. 시어머니 지소태후가 자신을 딸을 진흥왕의 태자(동륜태자)와 결혼시키려하자 미실은 동륜태자와도 가까이하여 임신을 한다. 그 후에는 진흥왕 마음도 사로잡게되고 권력의 힘은 남편 세종을 능가하게 된다. 남편이 부담스러워진 미실은 진흥왕을 움직여 남편을 전장터에 보내버리고 원화제도를 부활시켜달라고 졸라서 자신이 원화가 된다. 이 때가 미실의 나이 스무살 때였다. 원화가 된 미실은 설원랑과 미생을 좋아했는데 미생은 미실의 친남동생이고 설원랑은 미생의 친구였다.
한편 동륜태자와도 관계를 지속하였는데 동륜태자가 여자만 밝히는지라 미실이 자기가 거느린 유화 중에서 몇 명을 붙여줬는데 이것도 모자라서 아버지 진흥황의 후궁인 보명궁주까지 넘보다가 결국 보명궁의 담을 넘게 된다. 월담을 하다가 보명궁에 있는 개에게 물려죽은 사고가 일어났고 이 때가 572년이었다. 이 사건으로 궁궐은 발칵 뒤집혔고 진흥왕은 대노하여 사건의 진상을 캐니 미실이 관여되어있음을 알게 되었다. 미실은 원화의 자리에서도 물러나고 궁궐에서도 쫓겨난다. 하지만 진흥왕은 그녀와의 사랑을 잊지 못하여 다시 궁궐로 불러들인다. 진흥왕이 죽고난 후 미실은 본인의 남편과 애인들(세종, 미생, 설원랑, 노리부 등) 움직여 조정을 지휘하게 되는데 금륜을 허수아비 임금으로 옹립하기로 하여 왕위에 오르게하니 금륜이 진지왕이다. 허나 금륜은 임금이 되고 난 후 미실 일파들의 말도 듣지 않았으므로 미실은 임금을 폐위하기로 작정하고 남편 세종과 애인들을 움직여서 임금을 폐위하고, 진지왕은 죽음을 당한다다.
그 후 진흥왕의 손자인 진평왕이 열세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고 어쩔 수 없는 권력 역학에 의해서 미실이 진평왕과 관계하도록 되었는데, 미실은 이미 서른이 넘은 나이였지만 열세살이 된 임금인 진평왕에게 첫경험을 안겨다주는 영광을 얻게 된다. 결국 진평왕 시대에는 미실이 생존했던 20년간은 미실이 정사를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되었고 심지어 진평왕의 어머니 만호부인도 미실의 눈치를 살펴야했다.
이렇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던 미실이었으나 세월의 힘에는 이길 수가 없었다. 나이 60줄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때까지 미실에게 순애보를 간직한 남자가 있었으니...그의 이름은 설원랑이었다. 설원랑은 10대의 어린 나이에 미실을 만나 사랑하고 섬겼고 그 후로는 미실의 수족이 되었다. 풍월주(화랑의 대장 격)가 되라하면 풍월주가 되었고 미실이 병에 걸려 드러눕자 밤낮없이 병석을 지켰다. 그러다 그는 그녀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하여 죽게되어 40년 동안의 순애보는 그렇게 끝이 나고 말았다. 아~ 자판기를 두드리는 내 눈에도 눈물이 난다! 설원랑이 죽자 미실은 아픈 몸을 일으켜 슬피울었다. 그리고 자기의 속옷을 설원랑의 관에 넣어 함께 장사지내도록 했고 미실도 그의 사랑을 맞아들여 구천에서나마 부부의 언약을 하였다. 젊을 시절 사다함을 보낸 이후 한번도 열리지 않았던 그녀의 순정이 40년동안 지극정성으로 자신을 보필한 설원랑에 의해 열린 것이다. 그 며칠 뒤 그녀도 설원랑을 따라 구천으로 갔고 그녀가 사망할 당시 나이는 예순살쯤되었다고 (화랑세기는) 적고 있다.(박영규 지음 신라왕조실록)
3.한하운의 파랑새
파랑새 중에서 가장 가슴을 울리는 파랑새이다. 한하운은 문둥이 시인이었다. 몰골이 흉한 자신을 보면서 얼마나 세상을 원망했을까. 죽어서 파랑새가 되어 푸른 울음을 울겠다고 절규했다. 아마 둔탁하게 우는 파랑새 울음소리는 한하운선생의 살아생전 절규의 목소리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 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