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새를 찾아서(47)...파랑새(2)
1.파랑새의 둥지

까치집에 둥지를 턴 파랑새(2005년 7월 강원도 홍천)
‘파랑새는 침엽수림의 노거수 줄기에 있는 썩은 수동이나 딱따구리 까치 등의 묵은 둥지를 이용하여 번식한다.(윤무부 한국의 새)’
우리나라에서 파랑새 둥지는 주로 까치집을 이용하는 듯하다. 필자가 두 번 관찰한 파랑새 둥지도 모두 까치집이었다. 일본의 경우는 까치가 국소적으로만 서식하므로 파랑새가 번식하는 둥지는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인공둥지에서도 번식을 하며 전주나 교량에서도 번식을 한다. 일본의 파랑새는 대부분 딱따구리 둥지에서 번식을 한다고한다.
2006년도 월간버더 잡지 6월호에는 파랑새 특집 기사가 실렸다.

월간버더 6월 호 표지
파랑새 습성, 번식, 생태 복원 방향 등에 대해서 여러 필진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파랑새(파랑새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모든 새)에 관찰지과 탐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렇게 특집 기사로 글을 적을 수 있는 시기가 오리라 확신한다.
월간버더 2004년 11월 호에서는 파랑새의 인공둥지 만들기에 대한 기사가 나와있다. 2006년 6월호 내용과 많은 부분에서 겹치고 있으므로 2004년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다.
파랑새용 인공새집 걸기 시도
지금부터 20년전 정도 전 나가노현의 북쪽 끝, 니이가타현과의 경계에 가까운 사카에무라(栄村)에서 파랑새의 새로운 번식지가 발견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당시 나의 연구실 학생이었던 타바타(田畑)군(현재 나가노현 초등학교 교원)과 같이 이 새의 생태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 결과 치구마가와(千曲川)주변의 표고가 낮은 장소에 있는 너도밤나무 수풀에 계 10쌍 정도가 번식하고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 마을 뒷산에 있는 장소로서 눈바람 방지를 위해 소중하게 보호되어왔던 수풀의 나무 둥치에서 새끼를 기르고 있었다.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이 새는 번식에 적합한 나무 둥치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파랑새는 스스로 나무 둥치를 팔 수가 없다. 이 새가 사용하고 있는 나무 둥치는 딱따구리류가 번식에 사용했던 것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때문에 파랑새와 하늘다람쥐는 둥지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파랑새를 위해 인공새집 걸기를 시도해보았다. 최초 2개를 걸었는데 그 중에서 한 개가 번식에 사용되었다. 다음 해는 5개를 걸었는데 2개가 사용되었고 인공새집은 파랑새의 보호에 유효하다는 것을 알았다. 3년 째에는 삼림조합으로부터 나무를 얻어서 중학교 학생들과 20개 정도의 인공새집을 만들었다. 바닥에는 물빠지기 구멍을 개설하고 목재소에서 얻은 톱밥을 수cm 두께로 깔았다. 파랑새는 둥지 안에 둥지재료를 가져오지 않기 때문에 바닥이 판 그대로는 알이 굴러버리기 때문이다.
인공새집 달기는 파랑새가 오기 직전 5월의 연휴에 하였다. 그 전에 설치하면 하늘다람쥐가 사용해버리기 때문이다. 당시는 중학교 이과 클럽 학생들, 마을 교육위원회, 조수보호원, 그기에 나의 연구실 학생들 총합 20명 정도가 모여서 파랑새가 번식하는 수풀이나 번식의 가능성이 있는 수풀에 설치했다.
그 해에는 그 중 2개 인공새집이 번식을 하였고 다음 해는 7개로 늘었다.
그 후 이 인공새집 달기는 10년 이상 계속되었는데 지금은 사카에무라에서 번식하는 파랑새는 대부분이 인공새집에서 번식하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인공새집을 달아도 새들의 번식수는 더 늘지 않고 있다. 번식 성공률은 인공새집에 의해서 높아져도 다른 요인이 수의 증가를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졸업후에 교사가 되고 나가노현의 남쪽 끝에 부임한 다바다 선생은 애들과 텐류(天竜)강에 걸린 다리에 인공새집을 설치하고 파랑새의 번식수를 늘이고 있다. 이 시도는 성공하여 현재에서는 사카에무라와 거의 같은 수가 번식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나가노현 내의 각지에서 이 새가 번식하고있었지만 현재에서는 현의 북단과 남단에서 번식이 보일 뿐이고 양지역을 합쳐도 약 15쌍 정도로 그 대부분은 인공새집에서 번식을 하고 있다.

밤나무의 파랑새(2005년 6월 광릉)
파랑새를 둘러싼 환경 변화
인공새집 달기에 의해 파랑새의 수를 늘이는데 대성공한 지역도 있다. 그것은 오카야마(岡山)현과 히로시마(広島)현이다. 이들 현을 포함한 중국(中國) 산지에는 1980년대까지는 일정수의 파랑새가 번식하고 있었고 그 대부분은 목제 전신주에 뚤린 구멍에서 번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목제 전신주가 콘크리트 전신주로 교체됨과 더불어 번식수는 격감했다. 이 일에 위기감을 느낀 일본야조회 오카야마현 지부의 여러 분들이 콘크리트 전신주에 인공새집을 설치하는 시도를 하여 2001년에는 88쌍까지의 숫자를 회복하고 있다. 같은 시도가 히로시마현에도 실시되어 일시적으로 줄었던 번식수도 최근에는 회복하고 있다.
현재 일본 전체에서 서식하고 있는 파랑새는 약 250쌍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중 80%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설치된 인공새집에서 번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머지는 다리나 댐의 물빼기 구멍 등의 인공 구조물에서 번식이고 본재 나무 둥치에서 번식은 극히 적다. 파랑새에서 자연의 나무둥치는 구하기 어렵고 하늘다람쥐 외에 원앙, 솔부엉이도 같은 나무둥치 번식하는 새들 모두 번식 장소를 둘러싸고 엄격한 경합 관계에 있다. 현재 인공새집의 설치로 파랑새는 간신히 이 정도의 수가 번식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공새집은 본래 환경이 회복할 때까지의 대체 조치이다.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도 파랑새가 자연의 나무 둥치에서 번식할 수 있는 풍요로운 수풀을 조금이라도 회복시켜야할 것이다.

번식중인 파랑새(2005년 7월 경기도 의왕)
2.파랑새의 먹이(월간버더 2006년 6월호)

2005년 7월 강원도 홍천
신슈대학 교육학부 나카무라 교수의 지도 아래 1985년과 86년에 파랑새의 먹이를 조사했다. 먹이는 부화일로부터 2주일간 이후부터 조사하였다. 즉 새끼 키우기 중기부터 후기 기간이다. 채취 방법은 비닐 코드로 새끼의 목을 죄어서 호흡은 할 수 있으나 먹은 먹이는 넘어가지 못하도록하는 경수법(頸輸法, Kluijver 1933)에 의했다. 조사한 둥지는 1985년에 4둥지, 1986년에 2둥지 모두 6둥지였다. 채취는 한 배(2~5마리) 전부의 새끼에 대해서 1회당 거의 2시간을 실시하였다. 먹이의 일주 변화를 밝히기 위해 채취시간은 5~7시, 9~11시, 13~15시, 17~19시의 시간대로 나누어 측정했다. 둥지에 따라 시간대는 다르지만 1985년 1 둥지에 대하여 위 시간대에 1일 4회의 조사를 실시하였다. 또한 1985년 다른 한 둥지에 대해서는 새끼의 성장과 더불어 먹이 내용물 변화를 조사하기 위해 2~3일 걸러서 3회 조사하였다. 채취한 먹이는 25% 포르마린 액에 넣어서 보존하고 나중에 분석하였다.
총 6둥지의 21에서 96종류의 먹이를 채취하였다. 이 먹이는 연체동물문복족강 오나지마이마이과의 1개체를 제외하고 전부가 절족동물문의 곤충류였다. 곤충류에서 가장 많은 것은 풍뎅이와 하늘소 부류의 초시목(鞘翅目)으로 전체의 44.8%였다. 다음으로 많은 것은 매미와 방귀벌레 등의 반시목(半翅目) 32.5%, 이하 청령목(蜻蛉目)의 장수잠자리 15.6%, 여치나 메뚜기 부류의 직시목(直翅目) 3.1%, 쌍시목(双翅目) 등에 과 2.1% 순이었다.
초시목 중에서 가장 많았던 것은 풍뎅이과로 초시목 전체의 절반 이상(65.1%)를 차지했다. 이하 사슴벌레과의 톱날사슴벌레 16.3%, 하늘소 과 11.6%였다. 노래기도 한 개체 채취되었다. 반시목의 대부분(93.5%)은 매미과로 쓰르라미가 17개체로 가장 많았다.
채취한 먹이의 숫자는 둥지에 따라 2개체로부터 32개체까지 큰 차이가 있었다. 한 둥지당 25개체 이상을 채취한 3 둥지를 비교하면 풍뎅이과 매미과의 비율이 많고 양자 합하여 50% 이상을 차지하였고 종류 조성에 큰 차이는 없었다. 이 결과로부터 파랑새가 새끼에게 주는 대부분은 대형의 비상(飛翔)성 곤충이고 딱딱한 외골격을 가지는 것이 반수 가까이 차지하는 것을 알았다.
파랑새가 먹이를 잡는 방법
파랑새가 실제로 먹이를 포획하는 장면은 조사 중 가끔씩 목격했다. 목격 결과 다음의 세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었다.
(1)고목 나뭇가지나 전선 등 주위가 탁트인 장소에 앉아서 가까이 날고 있는 벌레를 발견하면 날아가서 공중에서 포획하는 플라이캐치라 불리는 포획 방법. 가장 많이 보이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2) (1)과 같이 열린 장소에 멈추어 있던지 또는 날면서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벌레를 발견하고 날아가거나 잡는 법
(3)수풀 상공, 농경지나 마을 상공을 날면서 선회하고 날고 있는 벌레를 잡는다. 아침 저녁으로 집단으로 나는 일이 많다.
[쉬어가는 페이지] 그 날의 악몽이 오늘 밤에도?
한국의 40대라면 1974년 호주와 대결을 펼쳤던 월드컵 예선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1974년은 필자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1970년대의 축구 열기는 지금보다 훨씬 덜 했을 것이리라하는 편견은 버리시고 이 글을 읽어주기를 바란다. 그당시 축구 열기는 지금 못지 않았다. 단적인 예를 하나만 들겠다. 70년대에는 ‘축구’라는 월간 잡지가 발행되어 일반인들에게 상업용으로 판매되었다라는 사실이다.
그 때 우리나라의 꿈은 월드컵에 진출하는 것이었다. 1970년은 멕시코 월드컵은 펠레의 수훈으로 브라질이 우승한다. 이 우승으로 브라질은 영원히 줄리메컵을 차지하게 되었다. 결승은 빗장수비로 이름난 이탈리아와 대결을 펼쳤는데 펠레, 자알징요로 대표되는 브라질 공격수들에게 힘없이 무너진다. 멕시코 월드컵 경기는 전경기 하이라이트로 편집되어 영화로도 극장에 개봉되었다. 이런 월드컵에 우리나라가 나간다는 것은 꿈이었다.
그러나 드디어 기회가 왔다. 번번히 예선에서 탈락의 쓴잔을 마시던 우리나라는 1974년 서독월드컵 진출에서 대양주의 호주와의 경기에서만 이기면 월드컵에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호주의 경기는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적진 호주에서 경기를 펼치고 홈인 우리나라에서 경기를 펼치고 여기서 무승부가 나면 제 3국에서 최종 경기를 펼치게 되어 있었다. 원래 동네 축구 체질은 우리나라는 남의 집에 가서 경기를 하면 주눅이 들지만 우리나라에서 경기를 하면 펄펄난다. 경기 진행 방식은 먼저 호주에서 경기를 펼치고 그 다음 우리나라에서 경기를 펼치는 순서였다. 호주의 시드니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은 적진에서 대등한 경기를 펼쳐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이 경기에서 헤딩의 명수 김재한이 해딩을 잘못하여 땅을 치는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김재한은 키가 커서 헤딩은 잘 했지만 다른 기술은 별로였으나 키 큰 호주와 경기에서는 제격이었다.
적진에서의 무승부는 작전대로였다. 우리는 드디어 월드컵에 나가게 되었다고 꿈에 부풀었다. 2차전인 서울에서의 경기는 동대문운동장에서 벌어진다. 역시 동네축구는 제 집안에서는 강했다. 호주에게서 먼저 두 골을 뽑아낸다. 전반전에 김재한과 고재욱의 공이 네트를 흔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뒷심이 없었다. 후반전에서는 체력 소모가 눈에 띨 정도였고 호주 선수는 지친 기색이 없었다. 흡사 오늘 호주 일본 경기와 비슷했다. 결국 후반전에 두 골을 허용하여 비기고 말았다. 월드컵 티켓을 눈 앞에서 놓치고만 것이다. 결국 홍콩에서 3차전이 벌어졌지만 동네 축구인 우리로서는 이길 가망은 없었다. 호주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2:0을 졌다는 기억만 날뿐이다.
오늘 일본도 30년 전의 우리와 똑같은 악몽을 경험하는 것을 보았다. 첫골은 운이 좋아 심판이 못보는 바람에 한 골 건졌지만 체력 싸움에서 뒤져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무릎을 꿇었다.
악몽의 호주...오늘 30년 전 모습을 떠올리며 씁쓸한 기분이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