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새를 찾아서(49)...흰배지빠귀


흰배지빠귀. 2006년 4월 2일 남한산성
흰배지빠귀는 윤무부 도감에는 여름철새로 기재되어 있고 남해 도서에서 겨울을 나기도하는 새로 기재되어있다. 그러나 버더디비에 올라온 흰배지빠귀의 촬영 일시와 지역을 보면 연중 고르게 촬영되었고 충청도 지역에서도 겨울에 촬영되었으므로 반드시 여름에만 오는 새는 아닌듯하다. 그렇지만 북쪽지역인 남한산성에는 4월부터 보였고 여름철새로 도래하였다. 일본 지역은 겨울철새로 월동한다. 가끔 여름철새로 번식이 관찰된 예도 있다한다. 나뭇가지에 둥지를 지으며 엷은 청록색에 적갈색 얼룩이 있는 알을 낳는다. 산란수는 4~6개이다.


2006년 5월 2일 남한산성



2006년 6월 24일 경기도 포천 주금산
[쉬어가는 페이지] 때까치의 추억
작년 12월 15일 콩새에 대해 글을 적으면서이런 내용을 적었던 적이 있었다.
‘필자가 어릴 적(60년대 중반)에 집앞에 감나무가 있어 매년 감나무에 새가 새끼를 낳고 번식을 했다. 이 새 이름을 콩새라고 했는데 40년이 지난 지금 새 형태에 관한 기억은 사라졌다. 단지 이 새는 괄괄하게 울었고 참새 크기의 2배 정도는 된 기억은 선명히 남아 있다. 콩새가 부화를 하면 쥐틀(철사 그물로 만든 쥐를 가두어 잡는 틀)에 새끼를 넣어 감나무에 쥐틀을 달아두면 어미는 계속 먹이를 준다. 새끼 콩새는 쥐틀 안에서 무사히 자라 여름 방학이 끝날 때면 둥지 서기를 하게 된다. 지금도 쥐틀 밖에서 먹이를 주던 어미 콩새 모습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번에 사진을 찍은 콩새가 어릴적 콩새인지 도저히 기억을 살릴 수 없다. 어릴 적 콩새는 분명히 여름에 부화를 했고(여름새) 울음소리가 대단히 괄괄했다. 모습은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울음소리는 기억을 할 것같아서 CD로 울음소리를 들어보았다. 울음소리가 어릴 적 보았던 콩새 울음소리와 달랐다. 그러나 번식 때의 울음소리는 다르므로 한가지 울음소리만으로는 판별할 수 없다. 매년 우리집 감나무에서 새끼를 키웠던 콩새. 이 콩새가 어떤 새인지 추억속에서만 기억되는 전설 속의 새일 뿐이다. 덩치가 참새보다 크고 우는 소리가 괄괄했던 새, 과연 그 새는 어떤 새였을까.‘
인가의 감나무 위에서 번식했던 새가 어떤 새였나하는 것은 나에게는 평생 의문점이었고 풀어야할 숙제였다. 이러던 어느날(6월 17일) 뜻밖에 이 의문을 풀 수 있는 글이 올라왔다. 산바람님이 새둥지를 촬영하여 ‘어떤 새의 알인지요?’라는 질문을 하셨고 ‘칡때까치’의 알처럼 보인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런데 이 답변에 대한 산바람님의 답글은 필자의 눈을 끌기에 충분했다. 답글에서 ‘어릴 때 감나무에 때까치가 집을 짓고 우리가 나무에 올라가 접근하면 온동네가 떠나갈 듯 울어댔는데...’라는 답변이었다.
그렇다! 내가 어릴적 우리 집 감나무에서 보았던 새는 때까치임에 틀림이없다! 때까치를 경상도 울산 지방에서는 콩새라고 하였던 것이고 나는 이 새가 지금의 콩새인줄 알고 작년 겨울에 촬영하려고 열심히 공을 들였던 것이다. 산바람님을 직접 뵌 적은 없으나 전화 목소리를 들어보니 경상도 억양이었으므로 경상도 지역에서는 때까치가 감나무에 많이 번식하였음을 충분히 증명해주셨다하겠다.
이 (칡)때까치가 번식을 하므로 나는 주금산으로 향했다. 산바람님이 친절하게 약도까지 보내주셨다. 그러나 약도에서 말씀하신 이동물체가 없어지는 바람에 한참을 헤매어 둥지를 발견하였다. 그 날 우연히(정말 우연히) 송순창 선생님(한반도조류도감 저자)을 만났는데 송선생님과 만남은 뒤에 후술 예정이다. 둘이서 둥지 위치에 올라가는 길에 큰유리새가 번식을 하고 있는지 먹이를 물고 있었다. 내 카메라는 원거리 리모콘 촬영이 가능하므로 리모콘을 송선생님께 맡기고 큰유리새를 찾으로 나섰다. 그러나 방금 보였던 새가 도저히 소리도 없어 결국 포기하고 올라오니 때까치가 아닌 흰배지빠귀였다. 위의 사진은 송선생님께서 찍으신 사진이다.
흰배지빠귀는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번식하는 조류라고한다. 그리 높지 않는 나뭇가지에 집을 짓는다. 친절하게 위치를 알려주신 산바님께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감나무에서 번식했던 새가 때까치였다는 답변에 더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